■ 이즈반도의 선택, 전국지보다 지역신문 지역주민들은 이른바 중앙지로 불리는 전국지만 바라보지 않는다. 더 큰 애정을 지역신문에 쏟는다. 지역신문은 더욱 더 지역에 충실해진다. 지역주민들의 소소한 일상까지 철저하게 지역을 챙긴다.
당연히 지역주민들의 지역신문 구독률이 높다. 지역주민들이 지불하는 구독료와 광고비는 지역신문의 체질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큰 밑거름이다. 전국지 구독료라는 명목으로 지역주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외지로 빠져나갈 일도 그만큼 줄어 들었다.
| |  | | | ▲ 이즈신문사 편집국 모습. ⓒ 무한정보신문 |
지역주민과 지역신문의 밀착관계가 공고해질수록 선순환 구조 또한 더욱 견고해진다. 우리에겐 부러운 이야기지만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반도의 주민들과 지역신문인 이즈신문에서는 이미 현실이다.
7개의 시(市)로 구성된 인구 60만명 규모의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반도에서 매일 4만5000부 정도의 지역신문을 만들고 있는 이즈신문.
이즈신문은 편집국과 광고국 직원을 합쳐 65명이 근무하는 중소 규모의 신문사지만 각 지역에 맞는 주민 밀착형 신문을 만들기 위해 이즈반도 도시 4곳에서 지역별 뉴스를 다루는 4개의 신문을 매일 발행하고 있다.
이즈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신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전국지나 지방지가 다루지 않는 지역의 세세한 부분까지 싣고 있는 점이다.
지역주민들이 보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부음기사와 출생기사, 애완견을 찾는 기사 등 생활밀착기사로 지면을 채운다.
또 태평양과 접한 관광지역인 이즈반도의 특성을 반영해 관청과 관광협회, 온천협회 등에서 자료를 받아 지면의 30~40%에 이르는 경제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경제기사 내용은 특별할 것도 없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직결된 관광객수, 연휴기간 숙박시설 예약률, 새 관광시설 소개, 관광시설 폐쇄 안내 등이 주를 이룬다.
이즈신문은 이 같은 노력으로 이즈반도내 배포지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이 됐다. 전국·국제뉴스는 전국지에서 보고, 지역소식은 지역신문을 통해 보는 이즈반도 주민들의 구독문화도 이즈신문이 전국지를 제치고 이즈반도의 최고 신문이 된 배경이다.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이즈반도에서 신문을 판매하고 있는 일본의 메이저신문들이 앞 다퉈 이즈신문과 손을 잡고 함께 신문을 배포할 정도다.
전국지와 지역신문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된 점도 있지만 지역주민들에게 지역신문의 위상이 절대적이고 독보적이어서 가능한 이야기다.
일본도 신문의 판매부수가 떨어지고 독자가 줄어 큰 신문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즈신문만은 예외다.
이즈신문 다카스 대표는 “이즈반도의 주민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알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지역신문을 끊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한 달 구독료가 전국지인 아사히신문(4000엔)의 절반도 안되는 1430엔에 불과하지만 연간 수입 7억5000만엔 가운데 구독료 수입이 광고비 수입과 같은 50%를 차지하는 점을 보면 다카스 대표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즈신문을 향한 지역주민들의 애정과 관심은 그야말로 무한하다. ■ 시리즈를 마치며- 도요타시의 지혜
우리에겐 성공신화로만 알려진 도요타자동차의 도시 도요타시. 이곳 도요타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유일한 수단인 것처럼 산업단지 개발과 기업 유치에만 사활을 걸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 |  | | | ▲ 도요타시청 스기모토 주임이 도요타시의 자동차산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
어떤 내용일까? 도요타시의 사례는 기업과 산업단지가 지역경제를 이끄는 견인차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특정 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자칫 지역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알려준다.
일본 아이치현에 위치한 도요타시의 본래 이름은 1000년 역사를 가진 실크의 원산지이자 양잠의 도시 ‘고모로시’였다.
1900년대 초반 양잠산업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자 침체일로를 걷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고모로시는 결단을 내렸다.
1938년 도요타자동차가 본사를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지와 도로 등 제반시설 투자에 예산의 50%를 들여 도요타자동차 본사를 유치했다.
당시 도요타자동차는 대기업이 아니었지만 자동차산업의 발전에 따른 도시 발전을 기대한 고모로시는 1959년 아예 도시 이름을 도요타시로 바꿨다.
1959년부터 약 15년 사이 도요타시의 지원으로 도요타자동차 공장이 늘어나면서 인구수가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산업용지도 160㏊에서 790㏊로 5배 가량 급증했다. 느는 인구에 맞춰 도요타시는 도로와 주택, 학교 등 사회간접자본도 확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산업이 계속 성장가도를 달리게 되자 이후 도요타자동차 관련 제조업 종사자가 전체 산업종사자의 37%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커졌다.
2008년 미국의 리먼브러더스사가 무너지면서 촉발된 금융위기 이전까지 도요타자동차 관련 법인세가 도요타시 전체 세수의 38%에 이르렀다. 무려 490억엔이 걷힌 해도 있었다.
하지만 리먼쇼크 이후 도요타시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도요타자동차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자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도요타시 전체가 줄줄이 타격을 입는 위기상황이 발생했다. 도요타자동차 관련 세수도 10분의 1로 급감했다.
모두 도요타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나머지 벌어진 결과다. 물론 ‘도요타자동차가 없는 도요타시도 있을 수 없다’는 대명제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이 때부터 도요타자동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도요타시는 현재 도요타자동차와 직결된 자동차산업과 더불어 재생에너지 등 차세대에너지산업과 하이브리드산업, 로봇·식품산업 등 산업의 다양화를 꾀하며 자체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이 기획기사는 충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충남도경제진흥원과 충남도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관해 취재한 것입니다. |